사건 개요
의뢰인(청구인)과 전 남편은 약 10여 년 전 혼인하여 슬하에 자녀 한 명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성격 차이와 가치관의 대립으로 불화를 겪다 수년 전, 법원의 조정을 통해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작성된 조정조서에 따르면, 자녀의 친권 및 양육권은 의뢰인이 단독으로 갖기로 했으며, 전 남편은 양육비로 매월 정해진 날짜에 70만 원을 지급하기로 명확히 합의했습니다. 이는 법적 효력을 갖는 집행권원으로서 당연히 이행되어야 할 약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혼 직후부터 전 남편의 태도는 돌변했습니다. 매월 정기적으로 지급되어야 할 양육비는 단 한 번도 제날짜에 입금되지 않았습니다. 전 남편은 이혼 후 약 2년 동안 단 4차례에 걸쳐 도합 100만 원만을 입금했을 뿐입니다. 이는 한 달치 양육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극히 적은 금액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전 남편은 아예 연락을 끊고 주소지마저 불분명한 곳으로 옮겨가며 양육비 지급 의무를 완전히 외면했습니다. 자녀가 성장할수록 교육비와 생활비 등 양육 비용은 가중되었고, 혼자 모든 경제적 부담을 떠안은 의뢰인은 경제적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마지막 희망을 품고 저희 법무법인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사건의 쟁점
당 법무법인의 전문 변호인단이 사건을 검토했을 때, 본 사건은 크게 두 가지의 심각한 법적 난관이 존재했습니다.
첫째, 전 남편의 의도적인 송달 거부와 행방불명 문제입니다.
양육비 심판 청구가 적법하게 진행되려면 전 남편에게 관련 서류가 반드시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전 남편은 의뢰인의 연락을 수년째 피하고 있었고, 서류상의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달라 일반적인 송달 절차로는 재판이 무기한 지연될 가능성이 매우 컸습니다. 재판이 열리지 않으면 판결을 받을 수조차 없는 위기였습니다.
둘째, ‘과거 양육비 감액’의 실무적 리스크입니다.
가사 재판 실무상, 수년 치의 과거 양육비를 일시에 청구할 경우 법원은 채무자의 현재 경제적 사정과 형평성을 고려하여 청구 금액을 상당 부분 감액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꺼번에 거액을 내는 것은 전 남편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논리가 받아들여질 경우, 의뢰인은 7년간 묵묵히 감내해 온 희생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일부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청구 금액이 5,500만 원이라는 거액이었기에, 법원을 납득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물증과 전 남편의 악의적인 미지급 정황을 논리적으로 입증하지 못한다면 일부 패소의 위험이 있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었습니다.
김앤파트너스의 조력
저희 법무법인은 의뢰인이 겪어온 세월의 무게를 증명하고 권리를 1원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전략을 실행했습니다.
[객관적 증거 수집 및 정밀 산출]
먼저 수년 전 작성된 조정조서를 확보하여 전 남편의 지급 의무가 법적으로 확정되어 있음을 명시했습니다. 이후 약 7년간의 금융거래내역을 낱낱이 조사하여, 전 남편이 입금한 소액의 내역을 제외한 나머지 5,500만 원이 명백한 미지급 상태임을 시각적인 표로 정리하여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이를 통해 청구 원금의 정당성을 데이터로 입증했습니다.
[공시송달 절차를 통한 신속한 법적 확정]
전 남편이 거주지에 없어 소송이 공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당 변호인단은 신속하게 주소 보정과 현장 조사를 마친 뒤 ‘공시송달’을 신청했습니다. 이는 법원이 서류를 보관하고 게시하면 송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강력한 제도입니다. 전 남편이 도망치듯 주소를 숨겨도 재판 절차를 확정 지을 수 있는 법적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감액 방어를 위한 강력한 변론]
전 남편에게 ‘경제적 가혹함’ 논리가 적용되지 않도록, 그가 장기간 의도적으로 양육비를 회피해 온 악의성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의뢰인이 홀로 자녀를 양육하며 겪은 경제적 고통과 그로 인해 자녀의 복리가 위협받았던 실질적인 정황을 피력했습니다. 과거 양육비 전액 인용이야말로 무너진 정의를 바로세우는 길임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지연손해금 청구를 통한 압박]
단순 원금 회수에 그치지 않고, 소송촉진법상 연 12%의 지연손해금을 함께 청구했습니다. 이는 전 남편이 판결 이후에도 이행을 늦출 경우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하여, 신속한 지급을 유도하는 강력한 경제적 압박 수단이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