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면

  • 네, 배우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집을 나가 동거·부양·협조 의무를 저버렸다면 민법 제840조 제2호 ‘악의의 유기’로 이혼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 다만 모든 가출이 유기는 아닙니다. 쫓겨났거나, 상대방의 냉대·부당한 행동 때문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면 유기로 보지 않습니다. 법원은 “나갔다”가 아니라 “왜 나갔는지,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봅니다.
  • 결국 나간 사정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는지가 결론을 가릅니다. 다른 사람과 살림을 차려 집을 비운 경우(축첩·동서)는 그 자체로 유기가 됩니다.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김앤파트너스입니다.

“배우자가 몇 년째 집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생활비도 한 푼 안 줍니다. 이 정도면 이혼되는 것 아닌가요?” 상담에서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런 상황은 민법이 정한 이혼 사유인 ‘악의의 유기’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가출=유기’는 아닙니다. 오늘은 그 경계가 어디인지 대법원 판례 세 건으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집을 나갔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한 이유

악의의 유기란

재판상 이혼은 민법 제840조가 정한 여섯 가지 사유가 있을 때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중 제2호가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입니다.

대법원은 ‘악의의 유기’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배우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서로 동거·부양·협조하여야 할 부부로서의 의무를 포기하고 다른 일방을 버린 경우를 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하나는 “부부의 의무를 저버리고 버렸을 것”입니다. 즉 단순히 집을 비웠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럴 만한 사정이 없는데도 배우자를 돌보지 않고 내버려 두었는지를 따집니다.

그래서 같은 ‘집을 나간’ 상황이라도 결론이 정반대로 갈립니다. 먼저 유기가 인정된 사례부터 보겠습니다.

반복해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은 경우

정당한 이유 없는 무단가출

꼭 다른 사람과 살림을 차려야만 유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뚜렷한 이유 없이 집을 나가고,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해 놓고도 다시 나가 버리는 일이 반복됐다면 그 자체로 유기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집을 나간 쪽이 오히려 피해자인 경우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유기가 아니다

그런데 “집을 나갔다”는 사실이 늘 나간 사람에게 불리하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가게 된 사정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오히려 집에 남은 배우자 쪽에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 판례가 그 경계를 잘 보여 줍니다.

세 판례를 겹쳐 보면 메시지가 분명합니다. 법원은 “누가 집을 나갔는가”가 아니라 “왜 나갔는가,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봅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가정을 저버린 쪽이 유기자이고, 상대방의 잘못 때문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쪽은 피해자입니다.

그래서 내 사건에선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실무 포인트

같은 ‘별거’ 상황이라도 어떻게 정리해 드러내느냐에 따라 평가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실무에서 중요한 것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준비할 것왜 중요한가
배우자가 나간 경위와 시점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집을 비웠는지가 ‘정당한 이유’의 유무를 가립니다. 문자·통화·메신저 기록으로 경위를 남겨 두는 것이 좋습니다
부양·연락 단절의 증거생활비 지급이 끊긴 통장 내역, 연락 두절 상태, 부양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한 기록 등은 ‘동거·부양의무 포기’를 뒷받침합니다
내 쪽에 책임이 없다는 점86므26처럼 상대가 “네가 나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내가 떠민 적 없고 복귀를 요청했다는 사정을 함께 정리해야 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악의의 유기를 이유로 한 이혼 청구권은 그 유기 상태가 계속되는 한 기간이 지났다고 소멸하지 않습니다. 96므1434에서 대법원은 축첩·별거 상태가 이혼 청구 당시까지 이어지고 있었던 사안에서, 기간 경과로 청구권이 소멸할 여지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사안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으니, 오래된 일이라도 미리 포기하지 마시고 상담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배우자가 집을 나간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이제 와서 이혼할 수 있나요?

악의의 유기는 그 상태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면, 나간 지 오래됐다는 사실만으로 이혼 청구가 막히지는 않습니다. 96므1434에서도 대법원은 유기 상태가 이혼 청구 당시까지 이어지고 있었던 점을 들어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구체적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사안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생활비는 조금씩 보내 주는데, 집에는 안 들어옵니다. 유기인가요?

생활비 일부를 준다고 해서 곧바로 유기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96므1434에서 남편은 아내가 살 집을 마련해 주었지만, 대법원은 동거의무 자체를 저버린 점을 들어 유기로 보았습니다. 핵심은 ‘동거·부양·협조’라는 부부의 의무 전체를 정당한 이유 없이 포기했는지입니다.

제가 먼저 집을 나왔습니다. 그럼 제가 유기한 것이 되나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86므26처럼 상대방의 냉대나 부당한 행동 때문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면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아 유기가 아닙니다. 다만 나오게 된 사정을 증거로 분명히 남겨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대로 뚜렷한 이유 없이 반복해 나갔다면(85므5) 불리하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유기가 애매하면 다른 사유로도 이혼할 수 있나요?

네. 배우자의 가출과 연락 두절로 혼인이 실제로 돌이킬 수 없이 파탄에 이르렀다면 제6호(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로도 접근할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제2호와 제6호를 함께 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사안의 구체적 사정에 따라 판단합니다.

배우자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상황으로 이혼을 고민하고 계신다면, 지금 가진 사실과 자료를 먼저 정리해 보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사안을 함께 살펴 ‘악의의 유기’로 갈지, 혼인 파탄(제6호)으로 갈지 가장 현실적인 방향을 잡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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