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초 요약
- 법원의 원칙은 ‘형제는 함께’ — 분리양육은 예외입니다.
- 아이의 복리에 더 부합한다고 인정될 때만 예외적으로 허용됩니다.
- 나누더라도 형제 간 교류를 잇는 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합니다.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김앤파트너스 이혼전문변호사 조아라입니다.
이혼을 결심한 부모가 가장 마지막까지, 그리고 가장 아프게 붙드는 문제가 아이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둘 이상일 때 상담실에서 반드시 한 번은 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형제를 떼어 놓는 것도 가능한가요?” 첫째는 제가, 둘째는 상대방이 키우는 식으로 나누는 것이 법적으로 인정되느냐는 물음입니다.
오늘은 실제로 형제가 각각 다른 부모에게 맡겨진 한 사건을 바탕으로, 분리양육이라는 다소 낯선 선택이 언제 허용되는지, 그리고 아이를 나누어 키우기로 했다면 무엇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지를 이혼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의 시선에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형제 비분리 원칙
원칙은 “형제는 함께”입니다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우리 법원이 선호하는 방식은 형제를 나누지 않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는 부모의 이혼이라는 큰 변화를 함께 통과하는 유일한 동행자이자, 서로에게 정서적 버팀목이 되어 주는 존재입니다. 부모가 갈라서는 상황에서 형제까지 서로 떨어져 각기 다른 집, 다른 학교, 다른 생활 리듬 속으로 흩어진다면 아이가 감당해야 할 상실은 두 배가 됩니다.
그래서 분리양육은 원칙이 아니라 예외입니다. 실제 재판에서도 한 부모가 자녀 전부의 친권과 양육권을 갖는 형태로 정해지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형제를 나누어 달라는 주장은, 그 자체로 “왜 굳이 나누어야 하는가”라는 무거운 설명 책임을 지고 출발한다고 이해하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분리양육이 허용되는 예외
그럼에도 나누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길일 때
그렇다면 예외는 언제 인정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러 사정을 종합했을 때 형제를 나누어 키우는 것이 오히려 아이의 복리에 더 부합한다고 판단될 때입니다. 양육권을 정하는 모든 판단의 궁극적 기준은 언제나 하나, “무엇이 이 아이에게 이로운가“이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함께 두는 것도 그 기준을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절대적 목적은 아닙니다.
제가 조력한 창원의 한 이혼 사건이 바로 그런 경우였습니다. 오랜 세월 남편의 폭언과 폭력, 의처증에 시달리던 아내가 결국 집을 나오면서 소송이 시작되었습니다. 다만 아내는 경제적 형편 탓에 두 아이를 한꺼번에 데리고 나올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한동안 아버지와 남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중학생이던 첫째가 아버지에게 손찌검을 당한 뒤 스스로 집을 나와 어머니에게로 왔습니다. 반면 초등학생인 둘째는 지금의 교육 환경과 생활 기반을 유지하는 편이 낫다는 현실적 판단 속에서 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있었습니다. 두 아이는 각자 처한 상황도, 마음이 향하는 곳도, 필요로 하는 것도 달랐습니다.
재판부는 아이들의 나이와 성별, 과거와 현재의 양육 상황, 양육 환경, 당사자의 의사, 그리고 각 부모와 아이 사이에 형성된 유대관계를 두루 살폈습니다. 그리고 첫째의 친권자이자 양육자로 어머니를, 둘째의 친권자이자 양육자로 아버지를 각각 지정했습니다. 한 가정의 두 아이가 서로 다른 부모에게 맡겨진, 전형적인 분리양육 판결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쪽 부모가 더 좋은 부모라서”가 아니라, “지금 이 아이에게는 이 부모와 이 환경이 더 맞아서”라는 관점입니다. 분리양육은 부모의 우열을 가리는 판정이 아니라, 아이 각자의 사정을 따로 들여다본 결과입니다.
법원의 판단 기준
법원이 실제로 들여다보는 것들
상담을 오시는 분들은 흔히 “제가 경제력이 더 나으니 제가 유리하지 않나요”라고 물으십니다. 물론 경제적 능력도 고려 요소이지만, 그것이 결정적 기준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재판부가 실제로 무게를 두어 살피는 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 판단 요소 | 법원이 살피는 내용 |
|---|---|
| 자녀의 의사 | 나이·성숙도에 따라 무게는 다르지만, 스스로 뜻을 밝힐 수 있는 아이의 목소리는 결코 가볍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
| 주된 양육자·현재 환경 | 지금까지 누가 실제로 아이를 키웠는지, 아이가 어디서 안정과 연속성을 얻고 있는지 |
| 정서적 유대 | 아이가 누구에게 마음을 열고, 누구와 있을 때 더 편안해하는지 |
| 부모의 태도 | 상대방과 아이의 관계를 존중하고 지켜 주는지, 아니면 방해하고 아이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는지 |
앞의 사건에서도 아버지에게 맞고 나와 어머니와 살기를 원한 첫째의 뜻이 판단에 실질적으로 반영되었습니다. 아이에게는 익숙함과 연속성이 곧 안정이고, 마음이 향하는 곳은 서류에 드러나지 않아도 재판 과정에서 분명히 감지됩니다. 그리고 네 번째의 ‘부모의 태도’는 뒤에서 따로 말씀드릴 면접교섭 문제와 곧바로 맞닿아 있습니다.
형제·부모 관계의 유지
나누었다고 관계까지 끊는 것은 아닙니다
분리양육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가장 오해하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형제를 나누고 부모가 한 명씩 맡으면, 그것으로 각자의 가족이 완전히 갈라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법이 의도하는 그림이 결코 아닙니다.
양육자가 아닌 부모에게는 자녀와 만날 권리, 즉 면접교섭권이 있습니다. 이는 부모의 권리인 동시에 아이의 권리이기도 합니다. 분리양육 사건에서는 이 면접교섭이 오히려 더 촘촘하게 설계됩니다. 앞의 사건에서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각자 데리고 있는 아이 외에, 떨어져 사는 다른 아이를 정기적으로 만나도록 서로 맞물린 면접교섭이 정해졌습니다.
| 양육하는 부모 | 함께 사는 아이 | 정기적으로 만나는 아이 |
|---|---|---|
| 어머니(의뢰인) | 첫째 | 둘째 — 매월 정해진 일요일 |
| 아버지(상대방) | 둘째 | 첫째 — 매월 정해진 일요일 |
아이들끼리도 이 왕래를 통해 서로 얼굴을 보고 관계를 이어 갈 수 있습니다. 몸은 다른 집에 있어도, 형제라는 끈과 부모라는 끈은 끊기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아이의 정서적 안정과 자존감, 유대감을 위하여 (떨어져 사는) 부모와의 면접교섭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취지입니다. 나누는 결정 못지않게, 나눈 뒤에 관계를 어떻게 지켜 줄 것인가가 분리양육의 진짜 핵심입니다.
승패를 가르는 양육 태도
결국 판단을 가르는 것은 ‘태도’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분리양육이든 단독양육이든, 재판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결정적 변수는 의외로 부모의 태도라는 점입니다.
앞의 사건에서 상대방은 아이의 학원 일정 등을 이유로 어머니와 아이의 만남을 거듭 미루고 가로막았습니다. 아이에게 “엄마가 너희를 버리고 갔다”는 말을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 주장을 아이의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앞으로도 면접교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친권과 양육권을 정하는 데 반드시 반영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아이와 상대 부모의 관계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그 자체로 양육자로서의 적합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반대로 소송 초기부터 면접교섭 사전처분을 신청해 아이와의 만남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고, 방해가 있을 때마다 이를 성실히 기록해 재판부에 알린 우리 측의 대응은, 아이의 목소리에 먼저 귀 기울인 부모의 모습을 재판부에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양육권 다툼은 “내가 상대보다 낫다”를 증명하는 싸움이 아니라, “나는 아이의 편에 서 있다“를 보여 주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변호사의 조언
마치며
형제를 나누어 키우는 일은 누구에게도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함께여야만 아이를 위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가 둘이면 사정도 둘이고, 각자에게 맞는 답이 다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형제를 나누느냐 마느냐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결정이 각각의 아이에게 가장 이로운가, 그리고 나뉜 뒤에도 아이가 잃지 않아야 할 관계를 어떻게 지켜 줄 것인가입니다.
분리양육은 신중하게 다루어야 하는 만큼, 사안마다 판단이 크게 달라집니다. 지금 자녀 양육 문제로 고민하고 계시다면, 막연한 걱정을 안고 혼자 결정하기보다 본인의 구체적인 상황에 맞는 상담을 받아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