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이혼변호사 조아라 칼럼] 외도의 기준
- Date : 2025.06.05
- Author : 조아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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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 어디서부터일까요?
“사랑해.”
그 한 마디를 들은 순간, 무너졌습니다.
직접 본 것도, 누군가에게 들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남편이 게임을 하며 누군가에게 속삭인 그 말이, 깊은 밤 집 안을 맴돌았습니다. 아내는 잠들 수 없었고, 홈캠에 남겨진 그 짧은 음성을 듣고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말이 진심이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그 말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묻습니다.
“변호사님, 어디까지가 외도인가요?”
이 질문은 마치, 우리가 사랑을 잃게 되는 순간이 언제인지 묻는 것과 비슷합니다.
결코 명확하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그 순간이 있습니다.
부정행위의 기준,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과거엔 외도라고 하면 ‘성관계’가 있었다는 것이 거의 필수 요건이었습니다. 간통죄가 있었던 시절, 부부 외의 사람과 육체적인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 형사처벌의 기준이었고, 민사상 위자료 청구 역시 그 기준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간통죄가 폐지되고 나서, 외도의 기준은 더 섬세해지고 폭넓어졌습니다. 민사상 위자료 청구에서는 성관계 여부보다, 배우자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 관계였는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저희가 진행했던 한 사건에서는, 남편이 게임에서 만난 여성과 밤마다 채팅을 하고 통화하며 “사랑한다”고 말한 사실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둘이 실제로 만난 적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법원은 이 관계 자체가 혼인관계를 해칠 수 있는 정서적 외도라고 보았습니다. 1,000만 원의 위자료가 인정됐습니다.
또 다른 사건에서는 매일같이 통화를 주고받던 남녀가 있었습니다. 10개월간 단 두 번만 만났지만, 법원은 감정적 유착을 근거로 부정행위를 인정하고, 2,000만 원의 위자료를 판결했습니다. 특히 끝까지 외도를 부인한 태도가 위자료 산정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감정의 무게, 법이 모두 셀 수는 없지만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어요."
"그냥 말이 잘 통해서 연락했던 거예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실제로 육체적인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고 믿는 경우도 많죠. 하지만 법은 관계의 본질을 따집니다. 단지 성적인 행동이 있었는지가 아니라, 혼인관계를 해치거나 배우자에게 극심한 배신감을 안길 정도의 감정적 친밀감이 있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꽤 단호합니다. 야간 통화, 반복되는 만남, 서로 ‘사랑한다’는 말… 그런 요소들이 쌓이면, 법원은 “이건 그냥 친구 사이가 아니다”라고 결론내립니다.
만약 외도를 의심받는 입장이라면, 성관계가 없었다고 무조건 부인만 하다가는 더 큰 책임을 지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오히려 "그 행동이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배우자에게 상처를 준 점에 대해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것이 관계 회복이나 법적 책임 모두에서 더 나은 방향일 수 있습니다.
외도, 관계의 경계에 서 있는 우리 모두의 질문
변호사로서, 그리고 결혼을 경험해 본 한 사람으로서 저는 종종 생각합니다.
외도라는 단어는 단지 ‘배신’이 아니라, 애정과 신뢰의 균열이 시작되는 순간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걸요. 그 순간은 성적인 사건보다 더 앞서 찾아오곤 합니다.
마음이 떠난 그 조짐, 혼자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감정을 기댈 때, 우리는 이미 ‘외도’의 문턱에 서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여러분, 법보다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지금 내가 하는 이 행동, 내 사람에게 떳떳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고개를 들 수 있다면, 적어도 부정행위라는 이름으로 법정에 서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미 마음의 다리가 무너졌다면, 그 다음은 상처를 덜 주는 선택을 해야 할 때입니다.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고, 누군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법적 대응을 준비해야 하겠죠. 그 어떤 선택이든, 저는 그 곁에서, 감정을 법의 언어로 다독여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외도의 기준은 변했지만,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복잡합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더 정직하게 관계를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